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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지의 궐기 ==== 전투 태세를 갖춘 농민군은 [[5월 8일]]([[음력 4월 4일]]) 부안을 점령하고, [[5월 11일]]([[음력 4월 7일]]) 황토현에서 관군을 대파하는 한편 정읍, 흥덕, 고창 지역을 습권하였다. 그리고 영광, 함평, 무안 일대를 거쳐 마침내 [[5월 31일]]([[음력 4월 27일]]) 전주성을 점령하였다.<ref name="parkus450">박영규,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도서출판 들녘, 1996) 450페이지</ref> 동학군은 전라도에만 국한되지 않고 외부로 확산되었다. 충청도의 회덕, 논산 일부 지역과 경상도의 성주, 칠곡, 대구, 하동에서도 동학교도들이 궐기하였다. 다만 농민군의 세력이 보은군 이북으로는 상륙하지 못했는데, 이들과 달리 동학교주 최시형 등은 민란에 다소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민란을 일으키다가 잘못하면 교조 최제우의 명예회복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고, 자칫하면 역도로 몰려 교세에 탄압을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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