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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원군 일파와 모의 ==== 이에 따라 대원군과 함께 대원군파의 중심이었던 이준용은 관직을 내무협판에서 통위사로 옮겨 병권을 장악, 불시의 병력 사용에 대비하고 다수의 장정들을 모아 대궐 내에 은닉하여 일본군대가 북진하여 병력이 허약해진 틈을 노려 농민군과도 내외 상응하여 거사하려고 하였다. 농민군이 금강에 이르러 그 기세가 놀랄 만하면 이준용은 이들을 토벌한다는 명분으로<ref name="han2420">한국역사연구회, 《1894년 농민전쟁연구 5》 (역사비평사, 2003) 242페이지</ref> 병력을 일으켜 한성을 점령한다는 계획이었다. 동학농민군과 사전에 계획을 짠 뒤, [[이준용]]이 토벌을 명분으로 부대를 구성하면 동학농민군은 빠진다는 계획이었다. 이준용은 이들을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출진명령을 얻어, 군병과 수백 명의 역사(力士)를 대동하고 과천, 수원 사이에 개부하여 오히려 일을 꾸며 합세 회군하여 서울로 들어와 사람들이 놀라고 왕이 피난할 때를 타서 한편으로는 그 부하인 통위영 병대<ref name="han2420"/>를 동원하려 했다. 대원군과 이준용의 계획은 "농민군이 재기하면 그 토벌을 핑계로 군사를 일으켜서 개화정부를 전복하고 정권을 잡으려던 것으로 재기병을 촉구하는 밀사를 보냈던 것<ref name="yukbi167">역사문제연구소, 역사비평:1997년 겨울호 (역사비평사, 1997)167페이지</ref>"이었으며, 또 만일 일본군이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러 내려가게 되면 즉각 해산하였다가 그 해 11~12월 경에 강이 결빙하기를 기다려 청국병이 오게 될 형편이 되면 협력하여 일본군을 격퇴하고 정부를 갱신하고 새로운 왕을 세우려는 것이었다. 이준용은 농민군에게 거병하여 한성에 오면 자신은 동학군을 진압하는 척할 것이니 적절히 싸우는 척하다 해산하라고 자신을 찾아온 일부 동학군 지도자에게 알렸다. [[이준용]]이 이끄는 통위병 영대로서 왕실을 장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수인들을 지휘하여 [[김홍집]], [[조희연]], [[김가진]], [[김학우]], [[안경수]], [[유길준]], [[이윤용]] 등을 죽이고 정부를 전복하여 정권을 장악한 뒤 고종을 상왕으로 추대하고, 왕비와 태자를 폐하여 이준용을 왕위에 올리기로 결정하였다.<ref name="han2420"/> 한편 [[흥선대원군]]과 [[이준용]]의 거사에는 위정척사 계열 유학자도 동의하고 있었으므로 이준용은 전봉준과 동학군 지도자에게 이 점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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