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주 메뉴
주 메뉴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둘러보기
🏠 Main
📅 오늘의 역사
📝 최근 바뀜
🎲 임의 문서
콘텐츠 모음
📂 분류 둘러보기
🔎 모든 문서 보기
편집 도구
📤 파일 올리기
⚙️ 특수 문서
🔗 외부 링크 검색
❗ 필요한 문서
사용자
👤 내 사용자 문서
💬 내 토론 문서
⭐ 주시 문서
📚 내가 쓴 글
⚙️ 환경 설정
도움말
❓ 도움말
미디어위키
검색
검색
보이기
로그인
개인 도구
로그인
로그아웃한 편집자를 위한 문서
더 알아보기
기여
토론
동학 농민 혁명
편집하기 (부분)
문서
토론
한국어
읽기
편집
원본 편집
역사 보기
도구
도구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동작
읽기
편집
원본 편집
역사 보기
일반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보이기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패전과 실패 === [[12월 10일]]([[음력 11월 14일]]) 새벽, 적의 기습공격을 받고 농민군은 논산으로, 다시 전주로 후퇴했다. 전열을 가다듬어 원평, 태인에서 결전을 벌였지만 역시 패했다. 전봉준은 직속부대만 남기고 농민군에게 해산명령을 내렸다.<ref name="parkus261"/> 곧이어 정부군 측의 소탕작전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죄없는 양민까지 마구잡이로 체포, 학살하고 마을을 잿더미로 만들었으며 부녀자를 능욕했다. 그동안 쌓아 올린 농민적 사회경제의 기반은 여지없이 무너져나갔다.<ref name="parkus261"/> 백양사에 숨어 동정을 살피던 전봉준은 정부군이 살육에 정신 없는 틈을 타서 직속부대를 서울로 잠입케 하고 세 명의 부하와 함께 순창으로 갔다.<ref name="parkus261"/> 동학군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관군과 일본군 연합군은 전봉준을 생포하면 막대한 상금을 준다는 포고문을 내걸었다. 전봉준은 정읍과 순창 등지를 전전하며 몸을 숨겼다. 그러나 과거 자신의 부하였던 김경천의 밀고로 체포되어 [[12월 28일]]([[음력 12월 2일]]) 한양으로 압송되었다.<ref name="parkus452">박영규,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도서출판 들녘, 1996) 452페이지</ref>
요약:
미디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다른 기여자가 편집, 수정, 삭제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자세한 사항은
미디어위키:저작권
문서를 보세요).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